기자는 읽는 대로의 존재다

[신문의 날 특별기고] “기자는 읽는 대로의 존재다”

[중앙일보] 입력 2011.04.07 00:00 / 수정 2011.04.07 00:14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

언론환경에 말의 과장 없이 지각 변동 수준의 대변혁이 일어나고 있다. 종이신문이 그렇고, 전파방송이 그렇고, 인터넷 매체들이 그렇다. 신문과 신문기자들에게 이런 변화는 현실 적응을 위한, 더 솔직하게는 살아남기 위한 일대 변신을 요구한다. 취재·보도의 글쓰기가 달라지고, 신문의 존재가치와 패러다임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메이저 신문들이 종합편성 방송 등 다양한 활로를 찾는 것도 시대적인, 아니 문명사적 요청이다.

 신문기자들은 속보는 트위터·페이스북·뉴스전문방송에 넘겨주고, 사건의 배경을 장황하지 않게, 쿨하게 설명하는 글쓰기를 체득해야 한다. 말은 쉬워도 실천은 어렵다. 종이신문 기자들은 체질상 인터넷 매체가 넘볼 수 없는 사건의 의미와 본질을 독자들에게 제공해야 하는 낯선 언론환경에 섰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해야 짧지만 깊이 있는 기사를 쓸 수 있다. 한국에만 있는 신문의 날, 외람되게 나의 기자 53년을 돌아보면서 “기자는 읽는 대로의 존재”(Journalist is what he/she reads)라는 경구에 겸손하게 귀를 기울인다.

[일러스트=강일구]
 이 경구는 말할 것도 없이 “인간은 먹는 대로의 동물(Man is what he eats)”이라는 말을 패러디한 것이다. 올해 기자생활 53년째를 맞는 나의 길고 긴 여정에서 수많은 인물들이 나에게 각자의 방식으로, 때로는 무언으로, 때로는 자극적인 말로 영향을 주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나의 기자 53년이 있다는 말에는 조금의 과장도 없다. 내가 기자가 되기 전에 고인이 된 사람은 그의 탁월한 기사를 통해서, 내가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은 상상력을 최대한으로 자극하는 고전적인 저서를 통해서 기자인 나를 ‘읽는 대로의 존재’로 만들어 주었다.

 내가 1958년 한국일보에 입사하기 한 달 전 최병우씨가 금문도 취재 중에 상륙정 전복으로 순직했다. 그때 중국은 장거리포로 연일 금문도를 포격하여 대만해협에 전운(戰雲)이 급박했다. 한국일보 편집국에는 그의 숨소리, 그의 체취, 그의 지적 향기와 기자정신이 남아 떠도는 것 같았다. 내가 기자로서 최초의 지적 자극, 엄청난 지적 충격을 받은 것이 바로 그 무렵이다. 한국일보 도서실의 최병우 코너에는 그가 중학 시절부터 읽던 손때 묻은 책들이 꽂혀 있었다. 책 표지 안쪽에 책을 읽은 날짜가 적혀 있었는데 중학 때 읽은 책 중에는 역사 서적과 함께 『파우스트』를 포함한 괴테의 작품들이 많았다. 페이지를 주르륵 넘겨보니 여백에 많은 것이 적혀 있었다. 나는 스물두 살의 나이에 『파우스트』 독일어판과 일본판을 대조하면서 읽고 있었는데, 아니 땀을 뻘뻘 흘리면서 씨름하고 있었는데 최병우씨는 중학 다닐 때 그것을 읽고 있었다. 그가 읽은 책들은 주로 문(文)·사(史)·철(哲)이 많았다. 나는 낙후감을 느끼면서 그가 읽은 책들의 제목을 메모했다.

 나는 1965년 창간을 한 달 앞둔 중앙일보로 자리를 옮겼다. 중앙일보에서 내 기자 생애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게 되는 엄한 보스, 큰 스승, 자상한 멘토(Mentor)를 만났다. 그가 고(故) 홍진기 회장(당시는 부사장)이다. 홍 회장은 기자들에게 지칠 줄 모르고 “책 읽으라”, “공부하라”고 독려했다. 내가 “김군은 요즘 무슨 책 읽나?”라는 질문을 받은 것은 그 수를 다 헤아릴 수가 없다. 제일고보(경기중학) 시절부터 독서광으로 알려진 그에게 읽지 않은 책을 읽었다고 둘러댈 수도 없었다. 1980년대에 나는 홍 회장의 해외여행을 자주 수행했다. 그는 일단 도쿄에 들러 여행 중에 읽을 서너 권의 책을 샀다. 이길현 중앙일보 지사장(나중에 삼성 재팬 사장)은 홍 회장이 지시한 책을 살 때 여분으로 한 권씩 더 사서 내게 안기면서 말하기 일쑤였다. “후딱 읽어 두라고!”

 중앙일보 기자들 사이에 홍 회장의 말을 흉내 낸 “이 사람아 공부 해!”가 유행어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나는 지금까지 외국의 수많은 언론인, 학자, 정치지도자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그들의 지적 향기를 맡고, 그들의 통찰력에 감화되고, 그들이 읽었거나 쓴 책을 읽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 어려운 인터뷰도 했다. 칼럼니스트 조지 윌과 조셉 크래프트, 뉴욕 타임스 대기자 해리슨 솔즈베리의 집 서재를 방문했을 때는 서가에 꽂힌, 고금을 망라한 책들에 압도되어 머리가 돌 지경이었다. 조지 윌의 서가에는 그리스 철학 책이 많았고, 솔즈베리의 서가와 소파 위와 방 바닥에는 영어로 된 자료들 외에 러시아어와 중국어로 된 책과 자료들이 꽂히고 나뒹굴었다.

 나의 긴 기자생활의 여정에는 몇 사람의 철학자가 등장한다. 그중 한 사람이 슬로베이나의 슬라보이 지제크(Slavoj Zizek) 교수다. 그는 다작(多作)의 철학자다. 그는 정신분석학자 라캉을 통해서 헤겔을 읽는다는 식의 책을 써서 주목을 받고, 9·11과 팔레스타인 등 수많은 현실문제를 철학자의 시각으로 조명하는 책을 양산해 낸다. 그는 프랑스 현대철학의 거봉으로 『천개의 고원』, 『안티 오이디푸스』, 『차이와 반복』의 저자인 질 들뢰즈 수준의 철학자인데 그 두 사람의 저서들은 기자의 생각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머리를 재충전시키는 신선하고 충격적인 새로운 개념들과 용어들로 넘친다.

 나는 기회가 닿으면 후배 기자들에게 두 가지 충고를 한다. 술 잘 사는 선배, 2차, 3차까지 붙들고 폭탄주 돌리는 선배를 경계하라는 것이 그 하나요, 늦기 전에 5개년, 10개년 독서계획 같은 것을 만들어 신들린 사람처럼 책을 읽되 맡은 분야에 관계없이 문사철의 바다에 한 이삼 년 푹 빠져보라는 것이 그 둘이다. 기자가 왕성한 독서를 한다고 반드시 성공이 보장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동시에 우리는 독서가 싫은 사람은 기자로, 아니 적어도 라이터(Writer)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

◆김영희 대기자=한국 언론계를 대표하는 국제문제 전문가이자 언론인. 중앙일보 편집국장과 출판본부장·수석논설위원·워싱턴 특파원 등을 거치면서 한국언론학회상·삼성언론상·위암장지연상·홍현성언론상 등을 받았다. 취재경험과 칼럼을 담은 저서 『마키아벨리의 충고』 등 3권을 냈으며, 단편소설 ‘평화의 새벽’으로 문학사상 신인상을 받기도 했다.

by 꼬수☆ | 2011/06/14 08:26 | MEDIA★ | 트랙백 | 덧글(0)

의약품 수퍼 판매는 정치다

[남윤호의 시시각각]


의약품 수퍼 판매는 정치다 / 중앙일보 2011.06.14

“여론의 비난은 이미 각오했다. 정부와 언론은 악의적인 매도를 즉각 중단하라.” 일반의약품의 수퍼 판매를 반대하는 전국의 약사들이 한목소리로 외칠 법하다. 그런데 이 말, 실제론 11년 전 의사협회장의 입에서 나왔다. 의약분업에 반대해 집단 휴진을 벌이면서다.

 당시 의사들은 ‘진료권 수호’라는 거창한 구호를 내세웠다. 국민에겐 그저 밥그릇 싸움으로 비쳤지만 말이다. 정부는 처음엔 강경하게 대응했으나 결국 의사들의 요구에 따라 의료수가를 인상했다. 정부의 미숙한 대응을 국민의 돈으로 막은 것이다.

 의약품의 수퍼 판매가 현안이 된 지금도 상황은 비슷하게 돌아가고 있다. 정책의 결정과 집행 과정에서 관련 이익단체들은 얻을 수 있는 건 최대한 챙기려 하고 있다. 그게 그들의 생리다. 물론 명분은 공익이다. 그런데 공익이 뭔가. 너무 추상적이고 애매하지 않나. 정부가 내세우는 국민편의도 공익이요, 약사들이 주장하는 의약품 안전 역시 공익이다. 논리적으론 그렇지만, 요즘 분위기는 압도적으로 전자(前者)에 기울고 있다. 일부에선 의약품의 수퍼 판매 허용이야말로 정의인 양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꼭 그럴까. 수퍼나 편의점에서도 약을 살 수 있게 하는 것은 의약품 자판기를 골목마다 설치하는 거나 비슷하다. 그 경우 안전성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누가 보장하겠나. 또 약품 매출이 증가해 산업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에도 양면성이 있다. 약 권하는 사회가 뭐 그리 바람직한가.

 그렇다면 이번 이슈는 옳고 그름의 대립이 아니다. 이익과 이익의 대결이다. 시쳇말로 밥그릇 싸움이라는 얘기다. 나쁘다거나 잘못됐다는 뜻이 아니다. 그게 바로 정치다. 미국의 정치학자 데이비드 이스턴은 정치를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고 규정했다. 밥그릇 역시 중요한 가치의 하나다. 정치는 ‘밥그릇의 권위적 배분’이기도 한 셈이다. 졸렬하다고? 저차원적이라고? 아니다. 밥그릇으로 다투는 게 이념투쟁이나 종교갈등보다 차라리 풀기 쉽다. 타협과 절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게 정치요, 그렇게 봉합하는 능력이 정치력이다.

 그런데 의약품 수퍼 판매를 다루는 정부의 정치력은 어떤가. 이미 밑천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 자리 저 저리에서 듣기 좋은 말만 하다가 외통수에 빠지고 말았다. 뒤늦게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판매 허용으로 결론 내고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니 약사들의 저항이 클 수밖에 없다.
 
  그들이 운영하는 약국의 경영상황은 복잡하다. 크기에 따라 대·중·소형으로, 입지에 따라선 병원 인근의 문전(門前)약국과 주택가의 동네약국으로, 영업 형태별로는 처방전문과 매약(賣藥) 중심 약국으로 나뉜다. 의약품의 수퍼 판매가 허용되면 매약 중심의 소형 동네약국이 큰 타격을 받는다. 반면 대기업 계열의 드럭스토어는 더 커질 수 있다. 약국의 양극화다. 약사들의 위기감은 의약품 안전에 대한 걱정보다 바로 거기에서 나온다. 이게 정부에 대한 반발로 이어지고 있다.

 이미 대통령은 방향을 정해줬다. 그럼 그 길로 냅다 달려나가는 게 공무원들의 생리다. 이게 과잉대응으로 나타나면 약사들을 더 자극하고 격앙시킬 위험이 있다. 그렇게 해서 이로울 게 없다. 정책결정 과정에서 충분히 소화되지 않은 집단이익은 집행 과정에서 다시 고개를 드는 법이다. 재반영을 요구하거나, 아니면 집행 자체를 방해한다. 약사나 의사는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는 집단이다. 의약분업 때 벌어진 의료대란의 기억이 생생하지 않나.

 이처럼 정책은 이익갈등이 일어나는 정치의 영역이다. 민주주의에선 참여자 중 어느 누구도 그 과정을 단독으로 지배할 수 없다. 정부가 혼자 열심히 한다고 정책이 성공하라는 보장은 없다. 이해 당사자들의 타협과 협상이 더 중요할 때도 있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이에 실패하면 그 비용은 국민이 후불로 치를 수밖에 없다.

남윤호 경제선임기자

by 꼬수☆ | 2011/06/14 08:23 | MEDIA★ | 트랙백 | 덧글(0)

무제_2 (5/12)

 

이 전에 피었던 꽃이라

기억 못한다 마오.


지금 새롭게 피는 것은

그때 그것이 있었기 때문이오.


지나간 흔적이라

모른체 하지 마오.


지금 그대가 있는 것은

그때 그 선명한 자취 때문이오.


by 꼬수☆ | 2011/05/13 10:23 | WRITING★ | 트랙백 | 덧글(0)

무제_1(5/2)

 

그냥 한번 웃어 볼 수 있을 터인데

꽉 다문 그 입술은

무엇이 그리 심통이 났더냐


그냥 한번 지나쳐 버리면 될 것을

못난 가슴

왜 그리 품어놓고 살더냐


한 번 가면

두 번 오지 않을 인생이라지만


한번이기에


인생을 더 쿨하게

살 수 없더냐

by 꼬수☆ | 2011/05/13 10:22 | WRITING★ | 트랙백 | 덧글(0)

마지막 인사

활활 타오른 불꽃이 아니라
한 해 동안 아름답게 피고 진
들꽃같은 사랑이라 해둡시다

이미 피고 진 꽃
어찌 하려니까마는
은은한 꽃향기가 아직 남아 있어
다행이오

나비같이 새로운 사랑이
찾아들어도
그대향기는 언제나 간직하리니

바람결따라 이 향기 전해지거든
그 때 한번
나를 떠올려주오.

by 꼬수☆

by 꼬수☆ | 2011/05/03 08:35 | WRITING★ | 트랙백 | 덧글(0)

감정

나는 생각하는 모든 것을 실현해 낼 수 있는 과학자이다. 식물에 끊임없이 물을 공급해 주고 있다는 자극을 심어 물을 주지 않아도 마르지 않는 식물을 개발해 냈다. 나는 이미 세계 최고의 과학자로 인정 받고 있다. 지구상에는 나의 손을 거쳐가는 것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사람들은 나를 마지막 문명의 신이라고 부른다. 

한달 전, 일반 사람과 거의 비슷한 언어수준을 가진 로봇을 개발해 혼자 사는 노인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이제는 인간에게 편리함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줄 수 있어 더 뿌듯하다. 머리를 식히러 샤워를 하고 나오는데 누군가 찾아왔다. 국무장관 빌 에디슨이다. 그는 내가 만든 손바닥 신문을 아주 잘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손바닥 신문은 손바닥 크기의 얇은 메모리판으로 손바닥에 올려놓으면 자신이 구독하는 신문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젊은이들에게만 인기가 있더니 글씨를 키워서 볼 수 있는 기능을 넣은 후 지금은 4-50대들의 필수품이 되었다.

그의 용건은 이 것이었다. 그의 손자가 키우는 미셸(강아지)이 자신의 말을 안 듣는다고 자꾸 때리기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미셸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 수 없냐고 물었다. 돈은 얼마든지 준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에겐 더이상의 돈은 필요없었다. 내 안에는 단지 새로운 도전에 대한 호기심과 한계를 시험해 보고 싶은 욕망뿐이었다. 나는 고민해 보겠다고 말하고 그를 돌려 보냈다. 로봇에 이어 식물까지는 칩을 삽입해 보았지만 이제껏 동물을 상대로 칩을 만든 적은 없었다. 나는 적잖은 고민을 했다. 그것이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았다. 

칩을 만들었다. 빌 에디슨이 나를 찾아온 후 3개월만이다. 일단 나는 칩에 6가지 기능만 삽입했다. 강아지의 감각기관을 자극해 '기쁨' '슬픔' ' 심심함' '배고픔' '화남'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심심함'이란 감정은 그의 손자에게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작동법은 간단하다. 이 칩을 강아지의 뇌에 이식을 하고 내가 원하는 감정을 강아지가 가질 수 있도록 버튼만 누르면 된다. 단 스위치를 항상 켜놓아야만 하고 꺼졌을 경우, 강아지는 자유의지대로 행동하게 된다. 부작용은 버튼이 꺼졌을 때 강아지는 이전에 받은 스트레스를 기억하고 돌발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한 가지 기능은 '죽음'이다. 강아지가 돌발행동을 할 때 이 '죽음' 버튼을 누르면 강아지의 모든 뇌기능이 마비되고 죽음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이 피해를 입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나는 미셸에게 이 칩을 삽입하고 리모컨을 그의 손자에게 쥐어 주었다. 작동법을 알려주고 마지막 '죽음'의 버튼에 대해서도 말해 주었다. 그리고 꼭 위급한 상황에만 사용하라고 일러 두었다. 

하나만 만들 생각이었는데 미셸이 전파를 타게 되면서 주문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강아지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키우는 모든 애완동물에게 그 칩을 넣기 원했다. 이구아나, 거미, 햄스터..... 주인이 원하는 대로 감정을 표출하는 동물들이 늘어났다. 그 종도 늘어났다.

요즘은 기능을 조금 더 추가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 다섯가지 감정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만 쉬고 싶다. 머리를 비우러 샤워를 하러 들어가는 찰나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난다. 누군가 찾아온 듯하다. 내가 처음으로 칩을 준 빌 에디슨의 손자다. 곱슬에 금발인 꼬마는 자그마한 입을 오물조물 움직이며 말한다. 그는 미셸이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이게 해 줘서 고맙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할 말이 있다고 한다. 나는 따뜻한 핫초코나 줄 요량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그러자 꼬마는 대뜸 말한다. 

"우리 엄마가 내 말을 너무 안 들어요........" 




   

by 꼬수☆ | 2009/01/07 15:55 | WRITING★ | 트랙백 | 덧글(0)

화장실

노인은 손을 뻗어 은빛 손잡이를 잡는다.  네번째 손가락과 새끼 손가락에는 있어야 할 손톱이 없다. 오래 전부터 빠져 있었는지 손톱 끝이 둥글다. 힘없이 손잡이를 돌리며 어깨로 나무 문짝을 슬며시 민다. [삐거덕] 문이 열린다.

 [이름: 최동춘
  나이: 73세
  전직: 세탁기 수리공]

청소를 안 한지 몇 달이나 지났는지 퀴퀴한 냄새가 진동한다. 노인은 이미 후각을 잃은 것인지 냄새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때가 꼬질꼬질한 변기 위에 걸터 앉는다. 
[할아버지 왔어? 오늘은 뭐했어?]
[뭐.. 노상 똑같지. 놀이터 나가서...]
노인은 멍하니 천장을 올려보다 천장과 벽이 만나는 지점에서 시선을 멈춘다. 그리고는 바닥에있는 비누로 시선을 옮긴다. 언제 사용했던 것인지 모를 만큼 비누는 쩍쩍 갈라진채 말라있다. 
[재미있는 거 없어? 얘기 좀 해줘. 하루종일 움직이지도 못하고 갇혀 있는 내가 불쌍하지도 않아? 맨날 그렇게 멍하니 앉아만 있고.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그나마 요새 할아버지가 자주 와서 좋긴 하지만...]

노인이 오늘따라 왠일인지 입을 연다
[오늘은 놀이터에 앉았는데 한 꼬맹이가 지나가더라고. 그래서 '너 몇살이냐' 하고 물었더니 아 글쎄 그녀석이 '할아버지가 알아서 뭐하게요' 라고는 쌩 가버리지 뭐냐. 허허 요새 애들 참....]
노인은 계속해서 실소를 터뜨린다.

[그렇게 또 한 참을 앉았는데 공 하나가 굴러와. 옆에 학생들이 갖고 놀다가 잘 못 굴러왔나봐. 그래서 공을 주으려고 일어나는데 그새 한 녀석이 와서 잽싸게 가져가더라고. 나도 한 때는 공 좀 찼었는데 허허. 이제 일어나는 데도 시간이 꽤 걸려.]
노인이 무릎을 만지작 거린다.

[오늘도 김영감이 안 나와서 계속 혼자 앉아 있었네. 그 양반 봄 부터 밖에 안 보이더니만 찬 바람이 불기꺼정 안 나타나네. 이제 바람도 점점 차져서 나도 이제는 바깥에 오래 못 있겠어. 다리도 시리고. 김 영감이 없으니 심심하기도 하고. 이럴 줄 알았으면 봄에 집이 어딘지라도 물어볼껄. 이젠 밥 먹을 때 말고는 입을 열 일이 없어.]

[아~그래서 할아버지가 요즘에 자주 들어오셨구나. 히히. 난 좋아요. 6년동안 여기 살면서 얼마나 심심했는데요.]

[애들은 잘 살고 있으려나. 큰 아 저번에 왔을 때 애가 몇살이었더라. 이제 장가 보낼 때는 안됐나 몰라. 잘 살고 있어야 하라 낀데. 그래도 지 애미 죽고도 잘 커가 얼마나 다행인지. 대학도 떡하니 붙고, 교수까지 됐으니 허허허. 아들 놈 하나는 내가 잘 키웠다니까. 허허허... 근데 그 무슨 미국이란델 가서는.. 뭘 그렇게 먼데까지 가서는...]
노인의 누르스름한 흰자위가 붉게 충혈된다. 그리움이 기다림이 되고 기다림은 눈물이 되어 흘러내린다. 아들 얼굴과 손자 얼굴을 떠올려 보지만 아들의 어릴적 얼굴만 기억날 뿐이다. 손자의 얼굴은 아무리 애써도 떠오르지 않는다. 노인은 머릿속에서 손자얼굴을 상상하며 그려본다. 노인은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얼굴들을 하나씩 그려본다. 

둘째 명숙이 열살 때 몸쓸 병에 걸려 죽은 마누라 얼굴, 
지 오빠 등록금 때문에 지는 대학 못갔다며 울고불던 명숙이 얼굴. 그래도 명숙이는 명절되면 전화는 꼬박꼬박한다.
수리공 할 때 뒤에서 껄떡대던 사장 아들놈 얼굴, 
월급 받는 날엔 꼭 같이 대포차에 갔던 덕근이 얼굴,
지 마누라 아파서 돌본다고 일 그만두고 가버린 상도 얼굴, 
아침에 놀이터에서 본 꼬맹이 얼굴,
축구공을 쌩 하고 가져가던 녀석 얼굴,

한명씩 얼굴을 그리던 노인은 생각이 잘 안나는지 눈을 감아본다. 그리고는 한동안 미동이 없다. 그러다 몸 속의 모든 기운이 서서히 빠져나가는지 몸은 맥없이 스러진다.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는 화장실에서 쩍쩍 갈라진 비누가 노인의 죽음을 외쳐본다. 하지만 아무도 알아듣는 이가 없다. 비누는 그 외침이 허망하다는 것을 알았는지 이내 잠잠해진다. 석달 뒤 딸 명숙이가 오기 전까지.   
  

by 꼬수☆ | 2009/01/05 19:17 | WRITING★ | 트랙백 | 덧글(0)

깍두기

5평 남짓한 방에 할머니와 한 아이가 앉아 있다. 저녁밥상에는 흰 쌀 밥 두 그릇과 깍두기 한 접시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아이는 얼마전 할머니가 고물상에서 가져온 TV 앞으로 기어가 버튼을 누른다. 파란 빛이 순간적으로 방안을 가득 메운다.
  [중국에서 신종 바이러스가 발견되었습니다. 무에서 이 바이러스를 일으키는 원인인 독성분이 검출되었다고 하는데 이 문제의 중국산 무는 이미 국내에도 대량 유통된 상태입니다 .바이러스는 간에 침투하여 간 기능을 마비시키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멍하니 TV를 바라보던 아이는 할머니를 한번 쳐다본다. 할머니는 말없이 밥그릇에 물을 부어 말아 먹는다. 

다음날 새벽, 할머니는 여느 때와 같이 고물상에 가서 리어카를 빌린다. 할머니 머릿속에는 온통 떨어진 쌀 걱정 뿐이다. 오늘은 박스가 많이 나와 5000원까지 받았으면 했다. 
아이는 여느때와 같이 아침을 먹지 않고 집을 나선다 .할머니가 어제 밤에 싸 놓은 도시락은 아침이자 점심이었다. 도시락을 책가방 가장 아래에 넣고 그 위에 책을 넣는다. 아이는 조금이라도 도시락이 따뜻해지길 바란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도시락 뚜껑을 열어 보지만 늘 그랬듯 밥과 깍두기뿐이다. 그런데 오늘은 그 아이말고 깍두기를 가져온 아이가 한 명도 없다. 아이는 짝꿍에게 깍두기 하나를 건네며 계란찜 하나를 바꿔먹자고 해본다. 짝꿍은 아이를 슬쩍 흘겨보더니 계란찜 하나를 그냥 건넨다.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깍두기 먹지 말래. 그거 먹으면 병 걸린다고.'
아이는 건네려던 깍두기를 도시락 통에 그냥 내려놓는다. 그리고는 흰 밥만 꾸역꾸역 입으로 밀어 넣는다.

할머니는 오늘 운이 좋았는지 박스가 많이 나와 6200원 을 받았다. 집에 가는 길에 수퍼에 가서 1kg 쌀 한 봉지를 사들고 집으로 들어온다. 아이는 방 안에 덩그러니 앉아 TV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마치 TV의 파란 빛과 아이가 소통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할머니는 갓 지은 쌀밥과 깍두기를 내어온다. 아이는 깍두기가 먹기 싫어진다. TV에서는 중국산 무 수입을 반대하는 집회 현장이 나완다. 현장에는 아이와 같은 또래들이 촛불을 들고 나와 있다. 아이는 이제 깍두기를 먹는 것이 무서워진다.
'할머니, 깍두기 먹으면 병 걸린데.'
할머니는 밥 그릇에 물을 부으며 대꾸한다.
'누가 그캐'
'내 짝꿍 엄마도 그라고 텔레비젼도 그라잖아'
할머니는 TV를 쳐다본다. TV에는 촛불집회에 찹가한 한 아주머니의 인터뷰장면이 나온다. 
[중국산 무가 사람을 죽일 정도로 위험하다는데 왜 정부는 수입규제를 안하는지 모르겠어요, 이제 애들한테 깍두기도 못 먹이겠어요]
할머니는 밥그릇에 물을 다 부은 후 TV로 다가가 꺼버린다. 그리고 아이의 숟가락에 깍두기를 얹어준다.
'다 거짓 나부렁이들,먹어도 안 죽어. 저거는 내 젊을 때 양 고기도 못먹게 하드만 다 먹어도 아무도 안 죽드라. 어여 밥이나 묵으라.'
아이는 찝찝한 마음이 있지만 밥 한 그릇을 금세 다 먹어치운다.
 
다음날 아침 할머니는 리어카에 TV를 싣고 다시 고물상으로 향한다.
아이는 TV가 없어진 것을 보고 시무룩해진다. 그러나 아이는 그 이후 다시는 깍두기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by 꼬수☆ | 2008/12/29 15:57 | WRITING★ | 트랙백 | 덧글(0)

커피

진한 향기가 잦아 든다. 10년 동안 머릿속에서 맴돌던 그 냄새가 후각으로 들어왔다. 내 몸에 촉수라도 생긴 것인지 또 이 곳이다. 짙은 갈색의 매끈한 통나무가 잘 다듬어진 한 카페. 사람들은 옆에 있는 큰 길이 더 편한지 이 작은 골목으로는 잘 들어오지 않는다. 결국 만나는 곳은 같은데도 말이다. 낯설지 않은 냄새가 풍긴다. 카페의 한 귀퉁이에 쩍쩍 갈라진 '보리숲' 이란 늙은 나무팻말은 그대로였다. 통나무는 새롭게 기름칠을 했는지 번쩍번쩍 거리고 안쪽은 리모델링을 했는지 하얀 인테리어에 모던한 느낌까지 풍긴다. 커다란 유리문 너머로 새로 카페를 운영하는 듯한 여주인 얼굴이 보인다. 재미있는 것은 주인도, 까페모습도 모두 달라졌는데 안쪽에서 그 때와 같은 커피향이 뿜어져 나왔다.  


'인사해, 새로 만나는 사람이야.'
'........'
'이쪽은 장민석, 여긴 김동현.'
'.........'

깔끔한 브이넥 스웨터에 진한 고동색 바지를 입은 그 남자가 먼저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S 기업에 다니고 있는 김동현입니다.'
낮은 저음때문인지 탁자가 미세하게 떨린다. 자상함이 묻어나는 말투이지만 그 속에는 상대를 제압하는 힘이 실려 있다. 또박또박 박힌 눈 코 입은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을 듯한 날카로움이 베어 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그녀만을 응시했다. 내 눈망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탁자 아래에선 애꿎은 휴지만을 만지작 거릴뿐 아무런 대꾸를 할 수 없었다.

'이 방법 밖에는 없었어, 미안해.'
내 표정을 살피는 듯 하더니 이내 떨리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이건 미안함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 존재 자체가 무의미한 것 뿐이었다. 붙지도 않은 사시에 6년의 세월을 쏟아부은 내가 바보였다. 그녀가 미안할 이유는 없었다. 헤어지고 싶어하던 그녀의 마음을 무시해온 것은 나였다. 시험에 붙을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달라고 한 것은 순전한 내 이기심이었다.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삐용~삐용~삐용~]
한 참을 서 있었다. 주변의 정적에 시간이 멈춰버린 줄 알았다. 몇시간을 그렇게 서있었는지 모르겠다. 앰뷸런스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주변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귓바퀴를 타고 들어와 고막을 울렸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얼굴을 돌린 아주머니와 두꺼운 외투를 꽁꽁 싸매고 있는 몇몇 사람들이 희미하게 보였다. 한 바퀴를 채 둘러보지 못했는데 내 손에 차가운 물질이 닿았다. 손이 언 것인지 더이상 손을 움직일 수 없었다.     

10년만이다. 10년 세월에는 강산도 변한다더니 공기부터 달라진 것 같다.
카페 문을 살며시 열며 들어갔다. 머릿속으로 의도했던 행동은 아니었다. 여주인은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컵을 닦던 손을 멈춘다. 그녀의 몸에서 커피향이 뿜어져 나왔다. 10년 전 그녀의 몸을 찔렀을 때 흘러나오던 붉은 색 액체와 같은 냄새였다. 자리에 앉은 나에게 그녀는 진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말없이 가져다 준다. 창백한 얼굴이었지만 그 속에는 악의가 없었다. 나에게 건넨 커피는 용서를 말하는 듯 했다. 내 앞에 높여진 아메리카노 향이 내 몸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안의 분노도 미안함도 모두 커피향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커피향이 내 몸속으로 모두 빨려 들어온 것이 느껴졌다. 그녀의 얼굴도 그 남자의 얼굴도 모두 사라져버렸다. 가볍게 카페 문을 열고 밖을 나왔다. 내 속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또 달라졌다.   

by 꼬수☆ | 2008/12/26 18:16 | WRITING★ | 트랙백 | 덧글(0)

시장경제가 이기적? 이타적? (조선, 이영완)

근대 사회는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가족의 붕괴와 소득의 양극화, 환경파괴 같은 어두운 그림자도 늘어났다. 과연 시장경제는 동물의 세계처럼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논리로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냉혹한 체제일까. 최근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시장경제가 발달한 사회일수록 이기적 행동을 하는 사람을 견제하는 이타적(利他的) 행동이 더 발달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권위적이고 종교가 지배하는 전통적인 사회일수록 오히려 이기적인 사람이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을 공격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전통사회에 가까울수록 더 이기적
영국 노팅엄대의 시몬 괴히터(Gachter) 박사는 투자게임을 이용해 나라마다 이타적 행동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를 분석했다. 투자게임은 이렇게 진행된다. 4명이 팀을 이룬다. 각 팀원은 자신이 가진 돈을 공공재에 투자할 수도 있고, 그대로 갖고 있을 수도 있다. 한 사람이 1달러를 투자하면 나중에 1.6달러를 돌려받는다. 하지만 이 1.6달러는 팀원 4명이 골고루 나눠 갖게 한다. 결국 투자한 사람은 1달러를 내고 0.4달러를 돌려받는 만큼 0.6달러 손실을 입게 된다. 반대로 다른 팀원도 투자할 것이라고 믿고 4명이 함께 투자를 하면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팀원 중 1~2명이 투자할 경우에는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한 번 투자한 팀원은 투자에 소극적인 다른 팀원을 징벌할 수 있게 했다. 자신이 이기적인 팀원을 지목하고 1달러를 내면 지목당한 팀원은 3달러를 벌금으로 내는 식이다. 징벌에 따른 1달러의 손해를 감수하고 집단을 위해 징벌을 하는 것이다. 바로 '이타적 징벌(altruistic punishment)'이다.
 
'사이언스'지 7일자 표지논문으로 게재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15개국에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이 투자게임을 실시한 결과, 나라별로 이타적 징벌의 빈도는 비슷하게 나타났다. 다만, 시장경제가 덜 발달한 권위적이고 종교 색채가 강한 국가일수록 이타적 징벌의 반대 격인 '반사회적 징벌(antisocial punishment)'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반사회적 징벌은 이타적 징벌을 당한 팀원이 반성은커녕, 오히려 자신보다 훨씬 많이 투자한 사람에게 역으로 징벌을 가하는 것이다. 투자를 많이 한 팀원이 자신을 징벌했을 것이라는 추측에 따른 것이다. 즉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되갚는 행동이다. 우리나라 대학생은 반사회적 징벌의 빈도에서 15개국 중 7위를 기록했다. 우리나라가 아직 경제 규모에 합당한 사회 규범을 갖추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결과이다.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최정규 교수는 "시장경제가 잘 발달한 사회일수록 이타적 징벌을 옹호하고 반사회적 징벌을 배격하는 사회적 합의나 규범이 잘 발달해 있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이타적 징벌이 협동 이끌어내</STRONG> 이타적 징벌은 협동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다. 2002년 스위스 취리히대 에른스트 페르(Fehr) 박사는 '네이처'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투자게임에서 인간의 협동이 가능한 것은 손해를 무릅쓰고 이기적인 사람을 징벌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처음 투자게임에서는 서로를 믿지 못해 갈수록 투자를 적게 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이기적 행동을 보였다. 그러나 이타적 징벌을 도입하자 징벌을 하면 손해를 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 이상 이타적 징벌을 했다. 그 결과 협동이 다시 살아나 투자액이 상승하고 나중에 모두 이익을 보게 됐다. 실험 참가자들은 처음에 20프랑을 받았지만 최종적으로 평균 39.7프랑씩을 갖게 됐다. 원시부족 사회를 분석해 보면 자급자족 사회보다 고래잡이를 하는 부족처럼 협동이 필요한 곳에서

이 같은 이타적 행동이 발달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렇다면 이런 이타적 행동은 어떻게 진화해 왔을까. 최정규 교수는 지난해 10월 '사이언스'지에 게재한 논문에서 "인간의 이타적 행동이 자기집단중심주의와 결합해 진화했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집단을 위해 희생하면 자신에게는 손해이지만, 그 결과로 자기 집단이 빈번한 적대적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게 되면서 '이타적 행동'이 고취돼 왔다는 것이다. 이런 자기집단중심적 이타성은 민족·종교 간 갈등이나 국가 간 전쟁 등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인류는 지구온난화나 에너지 고갈처럼 개별 국가를 넘어서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집단의 의미가 전 지구로 확대된다면 이런 전 지구적 문제의 해결도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by 꼬수☆ | 2008/03/11 10:15 | MEDIA★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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